[칼럼] 대통령의 오기(誤記)와 리더십 실패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5-10-20 13:39:27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이른바 ‘인천 마약 게이트’ 사건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발본색원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국가의 근간을 위협하는 마약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으로 보이지만, 정작 현장의 수사 시스템은 그 지시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할수록 조직은 혼란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수사 동력은 떨어지고 있다. ‘의지의 리더십’이 ‘시스템의 리더십’을 압도하면서 나타난 전형적인 오기(誤記)의 사례다.
현재 사건의 지휘권은 임은정 동부지검장이 쥐고 있다. 임 검사장은 심우정 전 검찰총장 시절 꾸려진 합동수사단을 지휘하고 있다. 실제 수사와 관련해서는 단장이 책임자다. 여기서 구성의 불안정과 권한의 불명확함 속에 사건은 표류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실질적 단초를 제공한 인물은 따로 있다. 당시 서울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던 백해룡 경정이 제보를 받아 움직였고, 그 결과 약200kg 규모의 2천억 원대 대형 마약을 적발했다. 그러나 백 경정은 수사 도중 돌연 좌천되어 강서지구대로 전보됐다. 그 배경에는 수사 과정에서 건드려선 안 될 ‘권력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후 대통령은 수사 진척이 없자 다시 백 경정을 동부지검에 파견하도록 지시한다. 겉으로 보기엔 “현장을 잘 아는 인물을 투입한 강력한 조치”처럼 비쳤지만, 실상은 ‘손발 묶인 파견’에 불과했다. 동부지검 소속 파견 신분으로는 백 경정이 일반 마약사범 수사에만 참여할 수 있고, 핵심 쟁점인 외압 의혹의 검찰, 국정원, 관세청, 경찰 등 개입 여부는 손댈 수 없다. 백 경정이 “이대로라면 인천 마약 게이트의 진실은 덮일 수밖에 없다”고 분노한 이유다.
백 경정은 “실질적 수사를 위해 최소 25명의 전담 인력과 외압 수사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임은정 검사장은 오히려 “(5명) 소수 인력으로 다시 수사를 재개하라”며 동부지검 내 작은 경찰서를 마련했다고 자랑한다.
대통령이 기대하는 ‘임은정-백해룡 콜라보’는 시스템을 무시한 이상론에 가깝다. 서로 다른 조직 논리와 역할 제약 속에서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출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사법 시스템을 모르는 판단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은 결국 리더십의 본질적 문제로 귀결된다. 국가 수사의 핵심은 ‘명령’이 아니라 ‘구조’다. 대통령의 지시는 일시적 자극일 뿐,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사는 공허한 쇼로 전락한다.
일간에서는 백해룡 경정을 총경으로 승진시키고 독립적 상설특검 혹은 민중기 특검 산하에 전담팀을 설치해 전권을 위임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동부지검 파견’이라는 편의적 절충안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사건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본질은 흐려진다.
임은정 검사장은 부임 두 달이 다 되도록 로드맵 제시도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능력 문제를 넘어, 구조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시스템의 실패다. 수사 라인은 분산돼 있고, 책임의 축은 모호하다. 위에서는 “발본색원”을 외치지만, 아래에서는 “권한이 없다”며 멈춰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그림 속에서 ‘의지형 리더십’의 정당성을 확인하려 하지만, 정작 조직은 그 그림을 따라가지 않는다. 국가 리더십의 기본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책임의 사슬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사 시스템은 이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백해룡 경정을 ‘현장 경험자’라며 불러놓고는, 수사권과 인력을 제한한 채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에 빠진 결정이다.
리더십은 감(感)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대통령이 수사 현장을 ‘정치적 무대’로만 바라보는 순간, 정의는 왜곡되고 법치는 흔들린다. 국민은 더 이상 구호나 지시로 안심하지 않는다. 실제로 움직이는 구조, 실질적 수사 권한, 그리고 결과로서의 신뢰가 필요하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다. 더 정교한 구조, 더 냉철한 시스템 감각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라’는 말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대통령 자신부터 시스템의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행정경험이 풍부한 대통령이 사법 시스템을 간과했다. 마약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는 길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투명한 절차와 책임 있는 인사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의 오기가 국가적 손실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감정이 아닌 시스템 리더십으로 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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