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방 중심 안전관리 한계…구조 전 의식 잃는 사례 반복
- 고용부, 고위험 밀폐공간 안전기준 전면 재정비 필요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최근 10년간 국내 밀폐공간 질식사고로 136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 규정은 작업 전 가스 측정과 환기, 감시인 배치 등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사고 발생 시 작업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비상호흡장비 관련 기준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년간 국내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174건 발생해 338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가운데 136명이 사망했다. 사고는 정화조와 오·폐수처리시설, 축산분뇨처리시설, 맨홀, 집수정, 화학물질 저장탱크 등 산소 부족이나 유해가스 축적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 주로 발생했다.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산업재해 가운데서도 치명률이 높은 사고 유형으로 꼽힌다. 황화수소나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 유해가스가 누출되거나 산소 농도가 급격히 낮아질 경우 작업자가 짧은 시간 안에 의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고 현장에서는 최초 작업자뿐 아니라 구조에 나선 동료들까지 연이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유형별 질식 위험 작업을 분석한 결과 ▲오·폐수처리시설·정화조·축산분뇨처리시설 작업 ▲불활성가스 취급 설비 및 갈탄을 사용하는 콘크리트 양생 작업 ▲아르곤 가스를 사용하는 배관·탱크 용접 작업 ▲각종 관거·맨홀·집수정·탱크 내부 작업 순으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식사고는 계절적으로 봄과 여름철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기온 상승에 따라 유기물 부패가 활발해지면서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하수·오폐수 처리시설 등에 대한 유지보수 작업이 증가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밀폐공간 작업 시 사업주가 작업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산소 및 유해가스를 측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기시설 운영과 감시인 배치, 비상연락체계 구축 등도 의무사항이다. 작업 전 산소농도는 18% 이상 23.5%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고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밀폐공간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작업 전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반드시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안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공간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고 환기와 보호장비 착용 등 기본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문제는 실제 사고가 작업 전 안전점검 이후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작업 시작 당시 기준치를 충족했더라도 작업 도중 유해가스가 유입되거나 산소농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작업자는 수십 초 안에 의식을 잃을 수 있다.
현행 규정은 가스 측정과 환기, 감시 체계 구축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작업자가 위급 상황에서 스스로 호흡을 유지하며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비상호흡장비에 대한 별도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맨홀과 정화조, 오·폐수처리시설 작업이다. 현행 규정은 2인 1조 작업과 감시인 배치, 환기 및 가스 측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돌발적인 유해가스 발생 상황에서는 이러한 조치만으로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안전 분야에서는 예방 중심 안전관리와 함께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비 체계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고위험 밀폐공간 작업의 경우 휴대용 비상호흡장비나 비상 탈출용 호흡장비를 개인보호구 체계에 포함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산업현장 일각에서는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추가 안전장비 도입에 소극적인 분위기도 여전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질식사고를 고려할 때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넘어 작업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안전장비 보급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현재 제도는 사고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는 사고 발생 이후 작업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대응 체계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며 "고위험 밀폐공간 작업에 대한 안전기준을 재검토하고 관련 장비 기준 마련 여부도 논의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밀폐공간 질식사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체계를 넘어 작업자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비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관련 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안전 사각지대를 보완할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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