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승훈을 다시 읽다
조홍식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3-01 23:17:11
이승훈(1864년 3월 25일 ~ 1930년 5월 9일) 독립운동가.
[세계뉴스 = 조홍식 기자]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교육과 민족계몽을 통해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은 대표적 인물 이승훈, 호는 남강(南岡)이다.
1919년 3월, 총칼 대신 선언서를 들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였다. 우리는 독립운동을 흔히 영웅적 결단이나 격정의 서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거리의 선동가가 아니라 교실의 설계자였다. 독립을 외치기 전, 독립을 감당할 국민을 길러야 한다고 믿은 지도자였다.
그의 업적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오산학교 설립은 단순한 근대 교육 실험이 아니었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시민을 길러내겠다는 장기 전략이었다. 그는 무장보다 인재를, 분노보다 준비를 택했다.
남강 선생이 강조한 자강(自强)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역량의 축적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열과 시민의식, 제도적 민주주의의 뿌리에는 이 같은 계몽적 지도력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운동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연합, 폭력 대신 선언, 투쟁 속에서도 질서를 잃지 않으려는 절제. 그것은 카리스마로 군중을 휘어잡는 방식이 아니라, 명분과 정당성으로 공동체를 묶는 방식이었다. 그는 앞에서 외치는 지도자라기보다, 뒤에서 토대를 다지는 설계자였다.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그 절제의 정치가 3·1운동을 세계사적 사건으로 남게 했다.
107년이 흐른 2026년 3월 1일.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와 성숙한 시민사회를 갖춘 나라에 살고 있다. 식민의 땅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굴곡을 지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 1919년의 선언이 있었다면, 그 선언을 가능케 한 정신의 한 축에 이승훈이 있었다.
혁명은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국가는 긴 시간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이승훈은 바로 그 축적의 시간을 선택한 지도자였다. 오늘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준비된 국민만이 역사를 바꾼다는 그의 믿음이, 2026년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또 한 번, 우리의 운명을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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