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해군 함정 해외 건조 막는 법규 완화 가능성 탐색 단계
▲ 한화거제조선소.
[세계뉴스 = 탁병훈 기자] 미 국방부와 미 해군이 한국 조선업계를 상대로 전투함과 급유함 건조·설계 역량을 공식적으로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미 해군 군함의 신속 건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정상 간 논의가 실무 차원의 구체적 검토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미 국방부와 해군은 최근 국내 주요 조선사들에 각각 전투함과 중형급 급유함에 대한 정보 요청서(RFI·Requests for Information)를 발송했다.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MASGA·Maritime Security and Global Alliance)’ 논의가 본격화한 뒤, 미국이 RFI 형식으로 한국 조선소의 함정 역량을 공식 문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연방조달규정(FAR)에 따르면 RFI는 정부가 사업 계획 수립을 위해 가격, 인도 일정, 생산 능력 등 시장 정보를 파악할 때 거치는 사전 절차다. 정식 입찰 이전 단계에서 잠재 공급업체의 기술·생산 역량과 시장 여건을 폭넓게 조사하는 성격을 가진다.
국내 특수선 분야 양대 축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지난달 각사의 전투함 설계·건조 역량을 정리해 미 국방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해군이 발송한 중형급 급유함 관련 RFI에는 이들 두 회사와 삼성중공업까지 포함해 총 3개사가 회신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 측 요청에 따라 그간의 군함·특수선 건조 실적, 설계 인력 및 기술 역량, 연간 건조 가능 규모(캐파) 등 조선소의 핵심 역량을 포괄적으로 담아 회신했다”며 “각 사가 추진 중인 대미 협력 프로젝트의 개요가 일부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3사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시장 진출 교두보를 확보해 왔다. 한화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뒤, 해당 조선소에서 미 해군 전투함을 건조하기 위한 라이선스 획득 절차를 진행 중이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헌팅턴 잉걸스, 제너럴 다이내믹스 나스코 등 미국 현지 조선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RFI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체적인 군함 건조 언급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상 차원의 메시지가 국방부·해군 차원의 실무 검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양국은 이미 지난해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 가운데 1천500억달러를 조선 협력 분야에 투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이번 RFI는 해당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자, 한국 조선소의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절차로 해석된다.
미국 내에서는 자국 함정의 해외 건조를 사실상 금지해 온 법·제도 완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현재 미 해군 함정의 해외 조선소 건조는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에 의해 크게 제한돼 있다. 이 조항은 군함 건조를 자국 조선소에 한정해 미국 조선산업과 관련 일자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RFI는 본격적인 사업 발주가 아닌 사전 조사 단계인 만큼, 실제 한국 조선소의 미 해군 함정 건조 참여 여부는 미국 의회와 조야의 정치·안보 논의, 조선업계 이해관계, 법 개정 여부 등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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