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첨단산업은 구호로 유치되지 않는다. 정치적 선언도, 정부의 보조금도 산업을 움직이는 본질이 될 수 없다. 반도체 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안정적인 전력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을 남부권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정책 방향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 누가 그 막대한 전력을 책임질 것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반도체 공장 4기를 가동하려면 약 6.3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이는 신형 원전 4기 이상이 생산하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반도체 공장은 일반 공장과 다르다. 순간적인 전압 강하나 정전만으로도 생산라인 전체가 멈추고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가 확보되지 않으면 반도체 공장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는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태양광은 해가 지면 멈추고 풍력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대규모 에너지 저장기술 역시 아직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정성을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기저전력을 책임질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원전이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학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문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인접한 영광에는 한빛원전이 있다. 하지만 한빛 1호기는 이미 가동을 종료했고, 2호기도 운전 종료를 앞두고 있다. 신규 원전 부지는 남아 있지만 지역사회는 여전히 원전 확대에 소극적이다. 환경단체들은 신규 원전 건설은 물론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까지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는 무엇인가. 영남에서 생산한 전기를 초고압 송전망으로 끌어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반도체 공장을 돌릴 것인가. 그 과정에서 막대한 국가 재정을 투입하고,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또다시 요구할 것인가. 산업은 원하지만 발전소는 다른 지역에 지으라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원전이 생산한 전기로 산업화를 이루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수도권의 첨단산업도, 호남의 산업단지도 모두 원전이 생산한 전기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런데 이제 정작 새로운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면서 원전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책의 일관성도, 지역의 책임성도 아니다.
세계는 이미 현실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은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전을 다시 확대하고 있고, 프랑스는 원전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유지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수록 안정적인 기저전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도 더 이상 이 논쟁을 피할 수 없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정부 지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발전시설과 송전망, 용수, 연구시설, 대학, 교통망, 정주환경까지 모두 포함한 산업 생태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미국 텍사스가 세계적인 반도체 투자처가 된 이유는 막대한 보조금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력과 인프라를 먼저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들에게도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첨단산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원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선택할 것인가. 둘 다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정치적으로는 듣기 좋을지 몰라도 산업 현장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역 발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반도체 공장을 원한다면 그 공장을 움직일 발전시설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값싼 전기만 소비하면서 발전소는 다른 지역이 맡아주기를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국가균형발전도, 지방의 미래도 완성될 수 없다.
필요하다면 이제는 더 근본적인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국가가 과학적 안전성과 경제성을 충분히 확보한 차세대 원전이나 소형모듈원전(SMR) 등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산업단지와 연계하는 방안까지도 공론화할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찬반의 감정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먹고살 산업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반도체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전기로 만든다. 그리고 그 전기는 누군가 반드시 생산해야 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반도체를 원한다면, 원전 또한 지역의 미래를 위한 현실적 선택지로 받아들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산업을 유치하는 도시의 책임이며, 국가균형발전을 완성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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