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050원의 정의, 법은 왜 약자에게만 엄격한가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5-10-22 13:35:39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초코파이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정(情)’을 상징해왔다. 선물로, 위로로, 혹은 작은 나눔의 표시로 자리 잡은 이 달콤한 과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초코파이가 법정에 서 있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초코파이 절도 사건’이 언급됐다. 한 하청업체 경비원이 사무실 냉장고에 있던 초코파이와 커스터드 케이크를 하나씩 먹었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벌금 5만 원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문제의 초코파이 가격은 고작 1050원. 그러나 그 초코파이 하나가 한 사람의 생계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경비업법상 절도죄가 유죄로 확정되면 그는 직장을 잃는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사소한 간식이 생존의 무게로 바뀌는 순간, 법의 이름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라 폭력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초코파이 사건’을 보아왔다. 소액 절도, 사소한 실수, 잠깐의 오해, 그 작은 일들이 하청노동자와 경비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배달노동자에게는 곧 ‘범죄자’라는 낙인으로 돌아온다.

반면, 수백억 원을 빼돌린 고위직은 ‘반성문’을 제출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권력자와 재벌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선처’를 받고, 서민은 단돈 천 원어치 과자에 생계를 잃는다. 법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믿기 어려운 이유다. 법의 균등은 선언적일 뿐, 정의의 저울추는 늘 약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초코파이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하청 구조와 법의 형식주의에 갇혀 있는가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4차, 5차 하청까지 이어진 파편화된 고용구조 속에서, 한 사람의 노동은 쉽게 대체되고, 그의 인권은 쉽게 무시된다. 그가 먹은 건 초코파이가 아니라, ‘허락된 인간적 존중’이었다. 그러나 그마저 법은 죄로 기록했다.

법은 냉정해야 하지만, 정의는 따뜻해야 한다. 법의 형식만 남고 온기는 사라진 사회에서, 정의는 더 이상 사람을 지키지 못한다. 약자를 향한 법의 칼날은 날카롭지만, 권력과 자본을 향할 때는 무뎌진다. 이런 사회에서 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의 장치가 된다.

초코파이는 원래 ‘정을 나누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정(情)을 잃은 정의(正義)의 얼굴을 마주한다. 법이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정의는 단지 서류 위의 문장일 뿐이다.

달콤했던 초코파이 하나가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드러냈다.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천 원짜리 과자에 인생이 걸린 사람 앞에서, 법은 여전히 자신을 ‘공정하다’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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