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검은 셔츠의 사나이' 이재명, 생존에서 설계자로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5-06-03 22:54:11
- 진보진영 마지막 카드, 대한민국은 준비되었는가
- 칼날을 넘어 다시 권좌로… 빛의 혁명 '시민' 호출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2024년 1월 2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시찰하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예리한 흉기를 휘둘렀고, 날카로운 칼날은 이 대표의 경정맥에 불과 수 밀리미터를 남긴 채 멈췄다. 그는 위급한 출혈 속에서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긴급 수술을 거쳐 간신히 생명을 건졌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촌각을 다퉜던 구조와 이송, 그 위태로웠던 순간은 한국 정치사의 한 장면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쓰러진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회복 직후 참모들을 불러 모아 “윤석열 계엄령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고, 이는 단순한 경계가 아닌 ‘정치적 선언’으로 해석됐다.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12월 3일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재명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이 한 장면만을 떼어내 말하기에는 삶 전체가 너무도 파란만장하다. 이재명의 정치적 여정은 고난의 산맥을 넘어선 인간의 의지 그 자체였다.
공장에서 사법고시까지 — 가난과 싸운 소년의 집념
이재명은 1963년 12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라났다. 중학교 대신 공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다 프레스에 손목이 눌려 관절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입었다. 이 사고로 성장판이 깨지면서 팔이 비틀어져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10대의 그는 삶이 아닌 ‘생존’과 싸웠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자격을 얻었다. 산업 재해로 팔의 통증은 계속 심해졌고,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동네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 커졌지만, 방황 끝에 마음을 다잡았고, 어떻게든 출세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자격을 얻었다. 그는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공부해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훗날 회고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지 성공 신화가 아닌,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을 증명해낸 서사였다.
변호사에서 성남시장으로 — 현실 속 약자를 향한 정치
변호사가 된 이재명은 이름보다는 행동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동자, 사회적 약자, 공익 피해자들을 위한 변론에 매진했고, 그 경험은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다.
2010년 그는 성남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두 번의 임기를 거치며 무상복지, 재정건전화, 지역 재생을 추진했다. 세간의 우려를 무릅쓰고 성남시의료원을 설립하고, 시민배당제를 도입하는 등 강력한 정책으로 성남시 행정을 전국적 모델로 만들었다.
2018년에는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 경기도 전역을 무대로 정책 실험을 이어갔다. 경기지역화폐 도입, 기본소득형 농민수당, 공공개발 환수 등 과감한 정책들은 진보와 실용을 아우르려는 그의 색채를 드러냈다. 그러나 화려한 이면에는 검찰 수사와 끊임없는 논란에 시달렸다. 정치인 이재명에게 ‘검찰’은 일상적 동반자였다.
두 번의 대선 도전, 그리고 생존
2017년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했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2022년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했지만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패했다. 두 번의 대선 패배는 그의 정치 인생에서 결정적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202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국회에 입성하며 정계 복귀를 알렸다. 이후 당 대표로 선출되어 정권 견제의 최전선에 섰고, 가덕도 흉기 피습 사건은 그의 존재를 다시 정치적 중심에 위치시켰다. 피습 이후에도 그는 곧바로 당무에 복귀했고, 당을 재정비했다. 살아남은 정치인의 책임이란 무엇인지를 그는 실천으로 증명해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 — 민주주의와 시민 중심의 철학
이재명의 정치는 언제나 시민 중심에 있었다. 그는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며, 자본 중심의 정책보다는 ‘시민의 삶’에 스며드는 행정을 우선했다. 그의 정치 철학은 복지 확대, 기본소득 실험, 개발이익 환수, 권력 분산 등 뚜렷한 방향성을 갖는다.
수많은 음모론과 정치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적 중심에서 생존하고 재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뿐이 아닌, 정책으로 시민과 만나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품은 지도자, 민심을 분배할 줄 아는 지도자, 대한민국 민주주의 또 다른 가능성
이재명의 삶은 한 정치인의 전기이자, 한국 사회가 지나온 근현대사와도 맞닿아 있다. 가난, 산업재해, 교육 불평등, 노동 현장, 그리고 거대한 권력의 장벽. 이 모든 것을 통과하며 그는 한 가지를 놓지 않았다. 정치는 결국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이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스스로 “굴욕의 나선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나선은 단지 하강이 아닌, 거꾸로 보면 상승의 나선이기도 하다. 이재명은 상처받은 몸으로 시대의 아픔을 안고 대통령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가 꿈꾸는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방식 자체가 시민에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라는 인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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