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반도체 호황은 영원하지 않아…미래산업엔 과감하게, 현금성 지출엔 냉정하게

박근종 칼럼니스트

segyenews7@gmail.com | 2026-08-26 16:14:01

- '적극재정'이라 쓰고 '재정 팽창'이라 읽을 것인가
- 800조 슈퍼예산의 함정…세수 호황 뒤 국가채무를 봐야 한다
- 돈이 늘었다고 지출까지 늘려야 하나…시험대 오른 정부의 재정 운용
- 세수 풍년은 잔치가 아니다…지금 필요한 건 '생산적 재정'이다
▲ 박근종 칼럼니스트

[세계뉴스 = 박근종 칼럼니스트]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올해 본예산 727조9,000억 원보다 10% 이상 늘어난 800조 원 이상 규모로 편성할 전망이다. 총지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다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적극재정'으로 규정하고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바이오 등 미래 성장산업과 청년·지방 주도 성장에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첨단산업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가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 문제는 재정의 방향과 지속 가능성이다. 일시적인 세수 증가를 근거로 국가의 지출 구조 자체를 크게 키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이번 팽창재정의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과 주식시장 활황 등에 따른 세수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당초 내년도 국세 수입은 421조1,000억 원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세수 여건을 감안하면 6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세수는 영원히 늘어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불과 2년 전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법인세 수입이 급감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경기의 사이클이 다시 꺾이면 지금의 세수 호황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출의 경직성이다. 정부와 여당은 출생부터 18세까지 매년 최대 120만 원을 지원하는 펀드와 연간 9조 원 규모의 아동기본수당, 지방국립대 신입생 등록금 전액 지원 등 대규모 재정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현금성 복지와 보조금은 한번 도입되면 줄이기가 어렵다. 경기가 좋을 때는 지급할 수 있지만 세수가 급감하는 불황이 찾아왔을 때도 같은 수준의 지출을 유지해야 한다면 결국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세수 풍년을 미래의 고정지출로 바꾸는 것은 결코 적극적인 재정 운용이 아니다.

거시경제 정책의 엇박자도 우려된다.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가 대규모 확장재정으로 돈을 풀면 민간 수요를 자극해 물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정부가 반대로 재정을 확대한다면 정책 효과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부담이 커지고 기업과 가계의 이자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정부의 적극재정이 오히려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으로 돌아오는 역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초과 세수를 활용해 조성하려는 '미래대응기금' 역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미래산업에 투자한다는 취지는 타당하지만 기존 예산과 사업 영역이 겹친다면 중복 지출의 우려가 커진다. 국회의 통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구조로 운용된다면 사실상 정부의 '슈퍼 예비비'로 변질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에 50조 원이 넘는 지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에는 숫자만 줄이는 형식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종료된 한시 사업이나 단순 사업비 삭감을 구조조정 실적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 유사·중복 사업, 관성적으로 유지되는 보조금 등은 과감히 정리하고 그 재원을 AI와 반도체, 바이오, 우주항공 등 국가 경쟁력을 높일 분야로 돌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산적 재정이다.

국가재정은 정부의 돈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며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국은 저출생과 고령화로 앞으로 복지 지출 압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재정 여력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따라서 초과 세수를 모두 새로운 사업에 쏟아붓기보다 일부는 적자와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활용해야 한다. 호황기에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불황이 왔을 때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

적극재정은 많이 쓰는 재정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불필요한 곳에서는 단호하게 줄이는 재정이다. 미래 성장엔진에 대한 투자는 확대하되 선심성 현금 지원과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은 냉정하게 걸러내야 한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얼마나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 쓰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결정하는 원칙이다.

일시적인 세수 풍년이 국가적인 재정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금의 풍요를 미래의 빚으로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이 미래세대에 대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 세계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