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핵무장 논의, 금기를 넘어 현실적 전략으로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5-08-21 15:16:11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북한의 핵 위협 고도화와 주변 강대국의 군사적 공조 강화 속에서 한국의 안보 전략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내 정치 불확실성은 "동맹 의존만으로 억제가 충분한가"라는 근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제 핵무장을 '금기'가 아닌 '정책 옵션'으로 올려놓고, 비용과 효익을 차갑게 냉철한 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 억제력의 균열, 동맹만으로는 부족한 현실
북한은 고체연료 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술핵 운용 개념까지 공개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다.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고, 일본은 '핵무장 잠재력'을 과시하며 군사력을 확장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확장억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미국 내 정치 변동성과 글로벌 우선순위 변화는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한국의 수도권 밀집형 산업 구조는 북한의 '핵 공갈'에 취약하다. 동맹의 지원이 늦어질 경우, 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 네 가지 전략 옵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한국이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 확장억제의 실질화(동맹 심화)
한미 핵협의체를 정례화하고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해 위기 시 신속한 대응 체계를 구축한다. 이렇게 되면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유지하며 외교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이 미국에 있어 위기 시 속도 저하가 우려된다.
● 전술핵 재배치 또는 NATO형 공유 모델
미국 소유 핵무기를 한국 기지에 배치하고 한국 플랫폼(항공기 등)으로 운용 준비한다. 확장 억제의 가시성과 근접성을 높여 국내 안보 불안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러시아·북한의 반발과 역내 군비 경쟁 가속화가 예상된다.
● 핵무장 '헤징'(조건부 준비)
NPT 틀 안에서 핵연료주기 연구, 지휘통제 시스템 등 민군 겸용 인프라를 합법적으로 강화한다. 이렇게 하면 국제적 비난을 최소화하며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핵전력 보유가 아니므로 위기 억제 효과는 제한적이다.
● 독자적 핵무장
NPT 제10조에 따라 탈퇴 절차를 밟고 자체 핵 개발에 나선다. 한국은 주권적 억제력과 보복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제재·외교 고립·막대한 개발 비용, 동맹 관계 파탄 위험이 크다.
■ 억제 이론의 핵심은 '있는가'보다 '살아남는가'다
핵 억제의 성패는 두 번째 타격 능력에 달렸다. 적의 공격을 받더라도 반격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생존성, 조기 경보, 안전장치다.
분산·지하화된 지휘통제 시스템, 이동식 발사대, 다층 미사일 방어망이다. 또한, 우주·공중·지상 감시 네트워크 활용이다. 여기에 오판 방지 시스템과 위기관리 프로토콜이 중요하다.
핵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는가 그렇지 않다. 운용 교리와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억제력이 생긴다.
독자적 핵무장은 NPT 체제 붕괴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경제 보복, 미국·EU의 금융 제재, 일본의 군사력 증강 등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 반면 동맹 기반 옵션은 외교적 비용을 줄이지만, 위기 시 미국의 결정에 의존해야 하는 정치적 리스크가 남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미 핵협의체 가동, 전략폭격기 등 자산의 정기적 전개다. 또한, 장거리 정밀타격, SLBM 전력, 다층 미사일 방어, 우주·ISR(정보·감시·정찰) 고도화 등 재래식 억제력의 강화다.
지휘통제 분산화, 비상 통신망 정비 등 생존 지휘 인프라를 갖추고, 한미일 미사일 경보 시스템 연계의 긴요성이다.
핵무장은 만능키가 아니다. 그러나 '금기'로 외면하기엔 안보 환경이 급변했다. 지금은 동맹 억제를 실질화하면서 동시에 핵 옵션을 전략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비용-효익 분석을 시작할 때다.
궁극적 목표는 핵 보유 여부가 아니라, 적이 전쟁을 선택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압도적 억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래식 전력, 생존성 인프라, 국민적 합의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전략이 필요하다.
"핵은 수단일 뿐, 목표는 평화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핵 자체보다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그 길만이 지속 가능한 평화의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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